미국 뉴욕 맨해튼의 유서 깊은 벨라스코 극장. 이곳에서 토니상 6관왕에 오른 K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을 관람하면 작은 책자 하나를 받을 수 있다. 출연진, 연출, 제작자 등 공연 정보가 빼곡히 담긴 이 프로그램북을 펼치다 보면 한 단체명이 눈에 띈다.‘The Wooran Foundation’, 한글로는 우란문화재단이다. 우란문화재단은 ‘어쩌면 해피엔딩’의 브로드웨이 공연에 직접 투자하지 않았다. 하지만 2014년 작품 개발부터 2020년 미국 첫 트라이아웃(시범공연)까지 지원을 이어간 공로를 인정받아 책자에 ‘프로듀서’로 이름을 올렸다.◇‘어쩌면 해피엔딩’의 숨은 조력자지난 8일 토니상 시상식에서 ‘어쩌면 해피엔딩’이 작품상 등 6관왕을 휩쓴 배경에는 ‘윌휴 콤비’로 불리는 박천휴 작가와 윌 애런슨 작곡가의 재능과 노력이 있다. 하지만 아무리 뛰어난 창작진도 다른 도움 없이 무대를 올리긴 어려운 법. 잠재력이 있는 두 창작자를 알아보고, 이들의 작품이 무르익을 때까지 든든한 지원을 이어간 ‘숨은 공신’ 우란문화재단의 역할이 컸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우란문화재단은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모친인 고(故) 박계희 워커힐미술관 관장의 호인 ‘우란(友蘭)’에서 이름을 딴 비영리 문화예술 지원 단체다. 동양화, 서예 등 문화 전반에 조예가 깊던 모친의 뜻을 이어받아 최 회장의 여동생인 최기원 이사장(SK그룹 2대 주주)이 사재를 출연해 2014년 설립했다. 척박한 환경에서 꽃을 피우는 난(蘭)처럼 성장 가능성이 큰 문화예술 인재를 지원한다는 목표다.우란문화재단은 주로 실험적 성격의 공연과 전시에 지원을 집중하고 있다. 완성
세상의 절반은 여성이다. 하지만 역사책에서 여성의 이야기가 차지하는 비율은 절반에 훨씬 못 미친다. 예술의 역사도 마찬가지다. 11세기 프랑스에서 만들어진 ‘바이외 태피스트리’는 자수로 제작한 중세 예술품 중 최고로 꼽히는 걸작이자, 영국사(史)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인 헤이스팅스 전투의 이야기를 담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이다. 70m 길이인 이 작품은 수많은 여성의 정교한 손기술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정작 작품을 만든 여성들의 이름은 어느 곳에도 기록돼 있지 않다.서울 소격동 아트선재센터 3층에서 열리고 있는 홍영인 작가(53)의 개인전 ‘다섯 극과 모놀로그’에 나온 대표작 ‘퍼포먼스 다섯 극을 위한 매뉴얼’(사진)은 바이외 태피스트리에서 착안해 역사 속 여성의 노동을 주제로 제작한 작품이다. 전시장 중앙에 원형으로 매달려 있는 여덟 개의 태피스트리에는 한국 근현대 여성들의 노동 이야기가 담겼다. 기생 출신 독립운동가 현계옥과 정칠성, 호미를 들고 독립운동에 나선 제주 해녀 부춘화 등 3명,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며 위험한 노동 현장에서 일한 소녀들이 대표적이다. 이는 자수라는 장르와 만나 역사에서 잊힌 수많은 여성 노동자의 이름과 기여를 상기시킨다.태피스트리 작품과 주변에 있는 조각 소품들을 활용한 퍼포먼스가 전시 기간 중 다섯 차례 진행된다. 드럼 연주를 배경으로 공연자들이 태피스트리에 수놓인 이야기와 장면을 토대로 한 춤과 움직임을 보여주는 식이다. 잊힌 존재들을 몸짓으로 다시 불러낸다는 점에서 일종의 제의(祭儀)와도 같은 퍼포먼스다. 한 관람객은 “설치 작품이 퍼포먼스를 통해 비로소 완성된다는 느
이지민(사진)은 소설가이자 시나리오 작가다. 1974년생으로 한신대 문예창작과에서 소설을 공부한 후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화과 석사 과정을 밟아 영화 시나리오를 공부했다. 2000년 <망하거나 죽지 않고 살 수 있겠니>로 제5회 문학동네 신인작가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이 작품은 2008년 영화 ‘모던보이’의 원작이다. 2009년 발표작 <나와 마릴린>은 영국 미국 등 5개국에서 출간됐다.2002년 개봉작 ‘품행제로’를 통해 영화 시나리오 작가로 데뷔했다. ‘밀정’(2016), ‘남산의 부장들’(2020), ‘서울의 봄’(2023) 시나리오 제작에 참여했다.이지민의 2010년 소설 <청춘극한기>를 원작으로 한 영화 ‘바이러스’가 최근 개봉했다. 주인공이 치사율 100%에 달하는 러브 바이러스에 걸려 사랑에 빠지고, 뒤늦게 청춘을 느끼기 시작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구교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