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MM 컨테이너선/ 한경DB
HMM 컨테이너선/ 한경DB
국내 1위 해운사 HMM이 관세전쟁 속에서도 한 달 새 20% 가깝게 상승했다. 미국이 전 세계를 상대로 벌이는 관세 전쟁이 오히려 해상운임을 치솟게 하면서다. 악재로 인식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선사들이 선복(선박 내 화물을 실을 공간) 공급을 줄였지만, 물동량이 줄지 않아 운임이 치솟은 결과다.

마치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의 호황과 유사한 운임 상승 흐름이 나타난 상황에서 증권가의 의견을 갈린다. 관세 유예 기간이 종료되기 전 물동량이 몰린 ‘일시적 호황’이라는 비관론, 선사·화주 사이의 ‘운임 헤게모니’를 선사들이 차지했다는 낙관론이 함께 나온다.

6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HMM은 2만1600원에 지난 5일 거래를 마쳤다. 4월 종가(1만8260원)와 비교하면 18.29% 상승했다. 지난 4일 장중에는 2만3650원까지 올라 52주 신고가를 다시 썼다.

해상운임이 급등한 덕이다. 대표적인 해상운임지표인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는 지난달 30일 2072.71을 기록했다. 주간 단위로 발표되는 이 지수는 4월30일(1340.93)에 단기 저점을 찍고 한 달 만에 54.57% 급등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일으킨 관세전쟁의 여파다. 고율의 관세를 부과한다고 으름장을 놓는 바람에 선사들이 선복 공급을 줄였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이내 관세 부과를 유예하면서 관세 부과 전에 미리 수입·수출하려는 물동량이 급증했다. 선사들이 임시결항과 선로 재배치로 선복 공급을 줄여놓은 상황에서 물동량이 늘어나니 해상 운임이 급등할 수밖에 없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4일(현지시간) 백악관 야외에서 열린 행사에서 연설하는 모습 / EPA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4일(현지시간) 백악관 야외에서 열린 행사에서 연설하는 모습 / EPA연합뉴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와 비슷한 흐름이다. 감염병의 세계적 확산으로 경제활동이 중단되다시피 하자 선사들은 노후 선박 폐선을 서두르며 선복 공급을 줄였다. 하지만 물동량이 크게 줄지 않아 선복 공급이 부족해지자 운임이 급등했다. 덕분에 HMM은 2021년 5조3372억원의 순이익을 거둬 해운 불황기 동안 쌓인 적자를 모두 메꿨고, 이듬해인 2022년에는 전년의 2배가량인 10조1170억원을 남겼다.

이같이 천문학적인 현금을 단기간에 벌어들인 선사들은 적극적으로 선박 발주에 나섰고, 최근 들어 해당 선박들이 잇따라 인도되고 있다. 선복 공급은 늘어나고 있지만, 운임은 팬데믹 이전과 비교하면 고공행진 중이다.

최고운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글로벌 해운사들이 화주(화물의 주인)들과의 심리 싸움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그는 “해운업계는 팬데믹 물류대란과 홍해 사태의 경험을 살려 외부 변수들을 유리하게 이용해 시장 패닉을 유도하고 있다”며 “무역 갈등, 정책 변화와 같은 불가항력 요인 앞에서 담합이 의심될 정도로 선사 간 점유율 싸움도 제한적인 모습”이라고 말했다.

운임 급등세가 나타나자 HMM에 대한 증권가의 전망도 긍정적으로 변하고 있다. 엄경아 신영증권 연구원은 “컨테이너선사들의 운임 전가 능력 상승도 중요하지만, HMM이 원가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 선대를 마련했다는 점이 중요하다”며 “향후 선대 구성의 내용연수 동안 업계 내에서 높은 수준의 이익률을 이어갈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했다.

해상운임 상승이 일시적일 뿐이라는 반론도 있다. 관세 부과 이후에 필요한 물량을 미리 주문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강성진 KB증권 연구원은 “관세 유예의 (운임 상승) 효과는 ‘조삼모사’”라며 “관세 유예 기간이 종료된 뒤에는 화물 운송 수요 공백기가 도래해 운임이 더욱 크게 하락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그는 당장의 운임 변동보다는 선복 공급이 크게 늘어나는 걸 우려해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4월 말 기준 컨테이너선 선복량은 전년 동기 대비 9.2% 늘었다. 이를 따라갈 만한 물동량 증가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강 연구원은 “1997년 이후 연간 컨테이너선 물동량의 TEU-마일(길이 6m짜리 컨테이너의 개수와 운송거리를 곱한 값)이 10% 이상 증가한 시기는 5번 정도밖에 없을 만큼 드문 현상”이라고 말했다.

한경우 한경닷컴 기자 case@hankyung.com